KOMOREBI

2026-10-29

KOMOREBI artwork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ADOY [KOMOREBI] 실은 알고 있었다. ADOY가 그리는 풍경이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ADOY가 그리는 청춘, ADOY가 그리는 낭만, ADOY가 그리는 그리움. 이들의 음악이 지나간 뒤 산더미처럼 남은 감정 덩어리가 모두 허상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알고 속았다. 속고 싶었다. 나를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음악의 소명이란 그런 거니까. 듣는 사람의 체온에 맞춰 굴절된 곳에서 우연히 나타난 신기루 같은 그 환영을 알면서도 가슴 가득 끌어안고 싶었다. 9년 전, EP 한 장으로 문득 시작된 밴드 ADOY의 여정은 그런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길 위에 놓여 있었다. 바로 그 길 위에서 ADOY는 흔들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순항을 이어가는 것 같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라고 명확히 설명 할 수 없는 사이 시간이, 마음이 희미해져 갔다. 그건 마치 주문에 걸린 회전목마처럼 ADOY의 음악 안에서 언제나 맴돌고 있는 장면을 닮았었다. 시간이 흐르며 금이 가고, 녹이 슬고, 빛이 바래가는 어떤 풍경이 타입랩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익숙한 세피아 빛 필터가 입혀 있었다. 차마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된 순환 터널 속에 막 발을 들여놓은 참이었다. 애써 터널을 빠져 나온 ADOY는 그 시기를 두고 ‘킨츠기(金継ぎ)’, 즉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기의 이음새에 금이나 은가루를 뿌려 수리하는 일본 고유의 공예 기법에 비유했다. 앨범의 제목이 될 수도 있었던 단어다. 오래 곁에 두었던, 어쩌면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품에 안아 정성스레 손 본 ADOY의 새 앨범 [KOMOREBI]는 그래서 ADOY 그대로이자 전과는 조금 달라진 ADOY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ADOY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두리번거리던 호기심 어린 눈동자 대신 이제 그 눈이 바라보는 건 두 발을 힘 있게 디디고 선 지금 이곳. 그리고 ADOY라는 이름 그 자체다. 앨범 발매 전 미리 선보인 ‘Gooood’과 ‘KONA’는 [KOMOREBI]가 취하는 바로 그 자세를 대표한다. 같은 색상표 안에 들어 있으면서도 사뭇 다른 두 곡을 채운 뭉근한 비트와 촉촉한 멜로디, 마법처럼 감겨오는 색소폰 연주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알던 그곳이 맞다는 안도감이 자연스레 밀려든다. 거부할 수 없는 알던 맛으로 노련하게 스타트를 끊은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잘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핸들을 튼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좋은 시원한 드라이브 감이 돋보이는 ‘Time’s a Thief’나 ‘ASK’, 변칙적인 리듬과 패션 핏(Passion Pit), 홀리 고스트!(Holy Ghost!) 등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믹싱 엔지니어 알렉스 알디(Alex Aldi)와의 협업이 돋보이는 ‘Omega’는 ADOY와 보낸 기분 좋은 한 철을 기억하는 청자라면 누구나 반가워할 곡들이다. 새로운 맛보다는 깊은 맛이 변화를 이끄는 건 무르익은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비장의 무기 같은 것일 테다. 다영의 몽환적인 보컬과 함께 앨범 한가운데에서 묵직하게 방향을 잡는 ‘ROMI’, ADOY 풍의 파스텔 신스팝에 싱어송라이터 김수영의 서늘한 목소리로 토핑을 더한 ‘No Repeat’, 무한의 우주에서 단 하나의 빛을 따르는, ADOY가 가장 잘하는 사랑 노래 ‘Romantic’까지. [KOMOREBI]의 목표는 뚜렷하다. 그 언제의 누구도 아닌 지금의 ADOY가 생각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담는다. 앨범 내내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그 ‘좋은 것’들이 무작위로 쏟아진다. 보이는 곳마다 한 움큼 쥐면 우리가 사랑한 바로 그 풍경, 그 바람, 그 리듬이 꽃가루처럼 흐드러진다. 타이틀 곡 ‘Kids Return’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유명한 작품과 같은 제목이다. 영화를 떠올리며 붙였다기보다는 여러 연상작용끝에 낙점된 타이틀이지만, 이마저도 [KOMOREBI]가 지향하는 지금의 ADOY와 꽤 닮아 있다는 게 재미있다. 영화의 마지막, 어떻게든 살아남은 두 주인공은 자전거를 타고 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 운동장을 돌며 이런 대화를 나눈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俺たち、もう終わっちゃったのかな)’,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했어(ばかやろう,まだ始まっちゃいないよ)’. 정말이지 바보 같을 정도로 ‘우리 모두 널 사랑해(We all love you)’라고 몇 번이나 반복하는 노래 위로 금이 가고 녹이 슨 곳을 애지중지 손 보는 ADOY의 뒷모습이 비친다. 가만히 지켜 보다가 그 등을 툭 치며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어진다. 그런 앨범이다. 앨범 제목 ‘KOMOREBI(木漏れ日)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나오는 햇살’을 뜻한다. 눈앞을 어른거리는 따스한 빛과 땀방울 사이로 ADOY가 출발선 앞에 다시 섰다. 새로운 시작이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Released
2026-10-29
Tracks
11
  1. 01 Gooood
  2. 02 KONA
  3. 03 Kids Return
  4. 04 Time's a Thief
  5. 05 Omega
  6. 06 ROMI
  7. 07 ASK
  8. 08 Zebra
  9. 09 No Repeat (feat. Kim Suyoung)
  10. 10 Gush
  11. 11 Romantic
Liner note author
김윤하
음원/앨범 • 2026.10.29 (목)
KOMOREBI

KOMOREBI

ADOY

Album
벅스지니멜론
트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