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ON
Artwork
앨범 소개 원문
LOBOTOME - LEMON
스윙스의 ‘불도저’ 프로듀서
15년 만에 도착한,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이 절정이었던 순간
로보토미(LOBOTOME)의 〈LEMON〉
로보토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대 말. 홍대 인근의 바 ‘BOWIE’였다. 내가 아는 그는 힙합 크루 오버클래스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이자 래퍼였다. 공연자로 처음 만난 로보토미는 힙합 비트 대신 실험적인 노이즈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공연 뒤풀이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그는 〈대영제국〉이라는 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로보토미의 랩 네임은 영국(youngcook)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영제국〉을 기다렸다. 〈대영제국〉은 발매되지 않았다.
2010년대 초 홍대 부근의 고깃집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고기에 소주를 들이키던 그는 이제 〈LEMON〉이라는 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후 만남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그는 계속 〈LEMON〉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LEMON〉은 발매되지 않았다. 하루빨리 듣고 싶었지만,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앨범을 들을 수는 없었다.
성격 급한 나는 결국 그에게 “내가 레이블을 만들어 서포트할 테니 너는 음악에만 집중해 〈LEMON〉을 완성해라”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이 설립됐다.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만들고, 리믹스 콘테스트도 두 차례 열었다. 아무도 없던 바다에 닻을 내린 영기획은 금세 이름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영기획에서 음반을 내고 싶다는 제안이 속속 들어왔다. 당시에는 전자 음악을 발매하는 레이블도 얼마 없었으니까. 〈LEMON〉을 내기 위해 만든 레이블이지만, 완성되지 않은 앨범을 발매할 순 없었다.
결국 완성된 다른 앨범을 먼저 발매했다. 이 또한 〈LEMON〉을 발매하기 전 경험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렇게 수차례 경험을 쌓고 나니, 발매한 앨범을 판매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전자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음반 판매로 이어지도록 당시 생기기 시작하던 페어의 형태를 빌려 암페어(Amfair)라는 전자 음악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LEMON〉을 판매할 수는 없었다. 발매되지 않은 앨범을 팔 수는 없으니까.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고 아무 일도 없던 건 아니다. 로보토미는 계속 〈LEMON〉에 수록할 곡을 작업했다. 기다리다 결국 로보토미에게 제안해 그중 일부를 〈protoLEMON〉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이대로 놔두면 영영 발매를 못 할 것 같아서. 기왕 이렇게 된 거 〈protoLEMON〉, 〈LEMON〉, 〈postLEMON〉 삼부작으로 발매하자고. 작업하던 곡 중 어떤 곡은 래퍼에게 갔다. ‘쿵, 쿵, 짝! 아우~’ 〈LEMON〉에 실릴 예정이었던 그 곡은 스윙스의 대표곡 ‘불도저’가 돼 길거리에서 울려 퍼졌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했을 때는 곧 발매할 거라며 미공개곡을 연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LEMON〉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때는 프랭크 오션도, 딘도 없었다. 아티스트가 예고한 앨범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일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로보토미는 올해까지 〈LEMON〉을 발매하지 않으면 곤장을 맞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한동안 나와 로보토미에게 “곤장식은 언제 하느냐”고 묻는 게 소소한 밈처럼 유행했다. 시간이 흐르고, 농담을 하는 이가 하나둘 줄었다. 〈LEMON〉이 언제 나오느냐 묻는 사람도 점차 사라졌다. 그렇게 〈LEMON〉은 잊혔다. 그사이 한국의 인디 게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 큰 인기를 끌었고, 로보토미는 자신의 이름을 LOBOTOMY에서 LOBOTOME로 바꿨다. 〈LEMON〉 대신 다른 프로젝트를 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나는 30대에서 40대가 됐고, 밤에 자고 오전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됐다. 더 이상 파티에 가지 않고 대부분의 나이트라이프를 끊었다. 서로를 보는 일도 점차 줄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만난 로보토미가 말했다. “저 〈LEMON〉 내려고요.” 응? 갑자기? 지금에서야? 왜? 머릿속에 물음표가 먼저 떴지만, 굳이 이유를 묻진 않았다. “그래. 내자.” 이후 데모를 주고받으며 작업을 이어갔고, 2026년 중반을 지나 마무리됐다. 왜 〈LEMON〉은 이제서야 도착하게 된 걸까?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왜 〈LEMON〉이 그동안 완성되지 못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로보토미가 〈LEMON〉을 작업하던 2010년대 초중반은 전 세계 일렉트로닉 음악의 황금기였다. 새로운 장르와 지역의 음악이 빠른 속도로 발견되고 섞이며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였다. 칠웨이브, 덥스텝, EDM과 트랩이 차례로 주목받았고, 시카고의 풋워크와 볼티모어, 저지 클럽처럼 지역의 플로어에서 자라던 음악도 인터넷을 타고 세계의 클럽으로 흘러들었다. 스마트폰과 플랫폼을 타고 누군가 새로운 비트를 올리면 지구 반대편의 디제이가 그 주말 클럽에서 틀었다. 사람들은 퓨쳐 베이스, 퓨쳐 비트, 퓨쳐 하우스처럼 기존 장르 앞에 ‘퓨쳐’라는 말을 붙였다. 무엇이 미래인지는 몰라도 곧 미래가 도착할 거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
로보토미 역시 요동치는 세계 속에 있었다. 새로운 음악이 나타날 때마다 듣고, 연구하고, 자기 방식으로 만들어봤다. 로보토미는 〈LEMON〉이 최전선이기를 바랐다. 문제는 최전선이 계속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새 장르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곡을 완성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미 다음 장르를 이야기했다. 완성하면, 유행이 바뀌고, 또 만들고. 50여 곡을 만들고도 앨범 한 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집착은 〈LEMON〉을 계속 만들게 했고, 같은 이유로 끝내지 못하게 했다.
〈LEMON〉이 발매되는 2026년의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Resident Advisor(RA)는 ‘There Is No Sound Of The 2020s. Yet.’이라는 영상에서 2020년대에는 시대를 대표할 새로운 사운드가 없다고 진단한다. 음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알고리즘과 스트리밍, 15초짜리 영상이 음악을 발견하는 주요 경로가 됐고, 한 장르를 키우고 퍼뜨리던 클럽과 지역 공동체는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을 거치며 약해졌다. 모두가 같은 게시판과 블로그를 돌아다니던 인터넷도 옆방의 유행을 모르는 수많은 방으로 나뉘었다.
로보토미는 너무 빠르게 도착하는 미래를 따라잡으려다 〈LEMON〉을 완성하지 못했다. 결국 하나의 미래를 가리키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서야 〈LEMON〉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그가 앨범을 완성한 방법은 ‘최전선의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었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아이디어로 돌아가고, 좋아하면서도 부정했던 음악을 인정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기로 한 셈이다.
로보토미가 처음 댄스 음악에 매혹된 지점은 드롭이 아니라 브레이크다운과 빌드업이었다. 트랜스의 패드와 애시드가 쌓아 올리는 긴장을 좋아하면서도, 장르의 전형적인 드롭이 싫어 그 취향을 인정하지 않았다. 첫 곡 ‘fiatlux 빛이 있으라’는 그 부정을 푸는 곡이다. 좋아하는 부분만 취사선택해 만들었다. 트랜스적인 인트로를 길게 끌고 가다, 본인이 음악 감상 역사상 가장 큰 충격으로 기억하는 그라임의 리듬으로 마무리한다. 이 방식은 앨범 전체에서 반복된다. 트랜스와 레이브의 빌드업, 그라임의 리듬과 8마디씩 주고받는 구성, 2010년대 로보토미 음악의 두 축이었던 게토 클럽과 퓨쳐 베이스. 자신이 통과해 온 음악을 꺼내 좋아하는 부분만 남기고 다시 조합했다.
같은 형식의 ‘eyeofprovidence 전시안’은 조합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곡으로, 로보토미 음악을 집대성한 트랙이다. ‘spinebuster 등골브레이커’는 퓨쳐 베이스의 사운드와 진행을 가져오되 그라임 리듬과 보이스 샘플 초핑으로 장르의 전형을 피해 간다. 게토 클럽에 레이브와 트랜스의 사운드가 더해진 ‘allmyfreaks 얼라들아’나 ‘alligatorsnappingturtle 악어거북’. 댄스 클럽에서 생각 없이 순수하게 순간을 즐기고 싶어 만든 ‘whyalwaysme 왜나만’ 등. 2010년대에 이태원의 언더그라운드 댄스 클럽을 다녔던 이라면 반가울 곡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곡들의 면면을 살피면 앨범의 방향이 단순히 회고는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이는 함께한 게스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wakeup 일어나’의 sinn davin은 로보토미가 디지코어 신을 지켜보며 송라이팅을 가장 인상 깊게 본 아티스트다. 직접 낄 순 없어도 새로운 신과 호흡하고 싶은 바람으로 함께했다. ‘sentfrommygalaxyS26ultra 우주로부터’는 “나도 비요크(Björk)의 ‘Hyperballad’ 같은 트랙을 갖고 싶다”는 로보토미의 욕망에서 시작했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가진 아티스트 HWI가 필요했고 기대 이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둘 다 15년 전의 〈LEMON〉에는 참여할 수 없던 이름이다.
처음 〈LEMON〉을 만들던 시기의 곡들은 이번 앨범에 남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dosilife (2014) 도시생활’이다. 본래 〈LEMON〉의 첫 순서로 예정되었던 곡이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통해 12년 전 사전 공개되었고, 디제잉을 할 때도 트레이드마크처럼 시작을 담당한 곡이다. 오래된 곡이라 실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오랫동안 〈LEMON〉을 대표해온 곡인 만큼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수록했다.
마스터 파일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했다. ‘dosilife (2014) 도시생활’이 끝난 뒤, 한동안 다음 곡을 기다렸다. 다음 곡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 이 곡은 첫 곡이 아니라 마지막 곡이니까. 〈LEMON〉이 도착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이 앨범이 너무 듣고 싶어 영기획을 만들었다. 그동안 영기획의 발매작은 40장을 넘겼고, 〈LEMON〉을 소개하려던 미디어와 판매하려던 암페어는 운영을 멈췄다. 3G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하며 다가올 미래에 두근거리던 나는 이제 AI로 릴스를 편집한다.
15년 전 〈LEMON〉은 발매되지 못했다. 발매되지 않은 앨범은 들을 수 없다. 이제는 〈LEMON〉을 들을 수 있다. 그거면 됐다.
글/ 하박국(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
[Credits]
01 fiatlux 빛이 있으라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2 eyeofprovidence 전시안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3 allmyfreaks 얼라들아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4 wakeup (feat. sinn davin) 일어나
Lyrics by sinn davin
Composed by LOBOTOME, sinn davin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sinn davin
05 whatdoesyoursoullooklike (Part 88888888) 거울보기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6 whyalwaysme 왜나만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7 spinebuster 등골브레이커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08 sentfrommygalaxyS26ultra (feat. HWI) 우주로부터
Lyrics by HWI
Composed by LOBOTOME, HWI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HWI
09 alljustazansang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10 alligatorsnappingturtle 악어거북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11 dosilife (2014) 도시생활
Composed by LOBOTOME
Arranged by LOBOTOME
Mixed by LOBOTOME
Mastered by LOBOTOME
Designed by kimm kijo
Executive Produced by HAVAQQUQ of YOUNG,GIFTED&WACK Records
Music Produced by LOBOTOME
YGWC-043
Details
- Released
- 2026-08-26
- Tracks
- 11
Tracklist
- 01 fiatlux 3:41
- 02 eyeofprovidence 3:52
- 03 allmyfreaks 3:29
- 04 wakeup (feat. sinn davin) 2:55
- 05 whatdoesyoursoullooklike (Part 88888888) 2:59
- 06 whyalwaysme 3:08
- 07 spinebuster 3:59
- 08 sentfrommygalaxyS26ultra (feat. HWI) 3:24
- 09 alljustazansang 3:15
- 10 alligatorsnappingturtle 3:12
- 11 dosilife (2014) 4:30
Credits
- Composer
- LOBOTOME, sinn davin, HWI
- Liner note author
- 하박국
- Lyricist
- sinn davin, H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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