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Fantasy

2026-09-03

Old Fantasy artwork
오래된 보석을 너에게 줄게 - CIFIKA [Old Fantasy]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음악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을 녹여 음악이라는 형태로 빚어내야만 숨 쉴 수 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만든 음악으로 타인이 숨 쉬는 걸 봐야 그제야 숨을 쉬는 사람. 둘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생존하기도 하고, 한 사람 속에 공존하며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전자 음악가 씨피카의 경우,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보이는 묘한 다면체로 이루어진 음악가였다. 전자 음악가라는 낯선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충분히 팝적이었고, 행위예술가처럼 보이는가 하면 어느새 성스러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다채롭다면 다채로운 그의 이러한 면면은 지난 10년간 씨피카의 음악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강화해 나갔다. 새 앨범 [Old Fantasy]를 듣다 보면, 한계를 가장 민감하게 느낀 게 씨피카 자신이었구나 싶다. 언젠가부터 그는 지난 시간을 낯설게 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나였지만 결코 나이지 않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씨피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해왔지만, 자꾸만 무언가 시야를 가렸다. 멜로디, 화성, 곡 구성 어느 하나 자신 있게 나만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가사 하나, 벌스 하나마다 타인의 시선이, 함께한 뛰어난 동료 프로듀서의 손길이 묻어 있었다. 불현듯 찾아온 낯선 감각은 씨피카의 오감을 다시 깨웠다. 나만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첨예하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게 했다. 클래식으로 시작해 클래식으로 끝나던 어린 시절,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아이돌로 삼았던 고등학교 시절, 그라임스(Grimes),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로드(Lorde), 포텟(Four Tet), OPN의 음악을 접하며 전자음악에 눈을 뜬 대학 시절. 씨피카라는 사람을 음악으로 기록한 과거의 결을 세세하게 쓰다듬는 동안 새 앨범의 시작이 어디여야 하는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순도 높은 분노가 온몸에 가득 찼던 2024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그곳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라는 강한 직감은 씨피카를 자석처럼 이끌었다. 앨범의 첫 곡 ‘Who’는 ‘계엄’이라는 두 글자로 오래 기억될 그날, 자유를 수호하는 예술가로서 치솟은 이글대는 감정으로 완성된 일종의 혁명가이자 선언이다. 격렬한 불길에 휩싸여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뜬 곳엔 여섯 살, 순수한 사랑이 자라던 모래 놀이터가 펼쳐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강렬한 에너지가 씨피카를 지금으로부터 가장 멀고 안전한 기억으로 이동시킨 셈이다. 어린 시절 풋사랑 이야기가 소박하게 담긴 두 번째 곡 ‘Mine’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 든 일상의 균열이 벌컥 열어젖힌 문 뒤에 비로소 펼쳐진 씨피카의 꾸밈없는 첫 고백이다. 좋아하는 아이의 생김새 구석구석이 여전히 눈앞에 생생한 비밀 정원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나니, 다음은 그저 일사천리였다. 씨피카의 마음속 알알이 맺혀 있던 이야기의 보석들이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십(Gossip)으로 단단해지다 결국 그로 인해 부서지고 마는 관계를 중첩되는 보컬과 반복되는 신스 베이스를 통해 청각적으로 구현한 ‘Passing a Gossip’이나 자장가와 악몽의 의도치 않은 교차점을 이질적이고 신비로운 샘플 조각으로 촘촘히 박아 넣은 ‘Lullaby’는 곡에 담긴 이야기가 그대로 청각화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직관적으로 선사하는 곡들이다.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미학으로 풀어내는 길을 찾아낸 씨피카는 바로 다음 단계로 들어선다. 다섯 번째 곡 ‘HEX’는 여러모로 앨범 [Old Fantasy]의 대표곡이라 할 만하다. 불안하게 반복되는 피아노와 신스 베이스, 현악 연주로 전개의 절정을 구성하는 노래는 클래식과 합창단 등 씨피카의 어린 시절 경험이 겹겹이 층을 이룬다. 멜로디나 가사 전달보다는 곡의 한 요소처럼 활용된 보컬과 그를 여러 번 중첩시켜 만든 한 사람이 부르는 듯한 기묘한 합창, 여기에 서로를 옭아맬 것처럼 얽혀 들어가는 현악 앙상블까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던 곡은 마치 신경 줄이 끊긴 것처럼 갑작스런 마무리를 맞이하며 마지막까지 청자의 귀를 긴장감 있게 사로잡는다. 이후 이어지는 ‘All because of’를 거쳐 앨범의 마지막 곡 ‘Belong 2 U’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저 쏟아지는 음악 아니 감정과 기억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밖에는 선택할 수가 없다. 진실(truth)과 멈춤(pause) 사이 무한 진동을 반복하다 끝내 사고를 멈춘,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절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지난한 과거의 기억을 처연히 바라보는 한 사람의 얼굴이 그곳에 있다. 그 얼굴에 세상의 모든 감정을 빼앗겨버린 듯, 주위가 온통 평화롭다. 얼어붙은 겨울 하늘에 뭉게뭉게 펴져 나가는 굴뚝 연기나 투명한 액체에 천천히 번져 가는 색을 무심히 바라보는 순간처럼 그렇게.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어쩐지 그런 고요의 세계가 남는다. 만약 이것이 지금의 씨피카가 찾아낸 자신만의 미학이라면, 그것 참 멋진 재주다. 씨피카가 뱃속에서 꺼내 건넨 보석을 받아 꿀꺽 삼킨다. 색이 변하기 전에 얼른.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 언제보다 솔직한, 새로운 씨피카를 만날 시간이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Credit] 1. Who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Nancyboy Arranged by CIFIKA, Nancyboy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Nancyboy Piano by Nancyboy Fx by CIFIKA, Nancyboy MIDI-Programming by CIFIKA, Nancyboy 2. Mine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Nancyboy Arranged by CIFIKA, Nancyboy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Nancyboy Fx by CIFIKA, Nancyboy MIDI-Programming by CIFIKA, Nancyboy 3. Passing a gossip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Arranged by CIFIKA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Piano by CIFIKA Fx by CIFIKA MIDI-Programming by CIFIKA 4. Lullaby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Arranged by CIFIKA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Fx by CIFIKA MIDI-Programming by CIFIKA 5. HEX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Nancyboy Arranged by CIFIKA, Nancyboy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Nancyboy Piano by Nancyboy Fx by CIFIKA, Nancyboy MIDI-Programming by CIFIKA, Nancyboy 6. All because of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Arranged by CIFIKA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Fx by CIFIKA MIDI-Programming by CIFIKA 7. Belong 2 U Lyrics by CIFIKA Composed by CIFIKA, Nancyboy Arranged by CIFIKA, Nancyboy Vocal by CIFIKA Additional Vocal by CIFIKA Synthesizer by CIFIKA, Nancyboy Piano by Nancyboy Fx by CIFIKA, Nancyboy MIDI-Programming by CIFIKA, Nancyboy All tracks recorded by LEE DONG HEE @SSMD live studio All tracks mixed by Te Rim All tracks mastered by Aepmah @AFMLaboratory Visual Director: Roh Jaehoon (RUFFDRAFT) Assistant Visual Director: Kim Youngwoon (RUFFDRAFT) Design: Park Seo Oh (RUFFDRAFT) A&R Director: 장세훈 Executive Producer: CIFIKA, 장세훈 제작지원: 한국콘텐츠진흥원
  1. 01 Who 3:15
  2. 02 Mine 3:35
  3. 03 Passing a gossip 5:36
  4. 04 Lullaby 3:25
  5. 05 HEX 3:55
  6. 06 All because of 4:26
  7. 07 Belong 2 U 3:04
음원/앨범 2026.9.3 (목)
트왱